
저자 : 조지오웰
1903년 영국의 식민지 벵골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국 공관의 하급 무관이었으며, 두 살이 되던 해 영국으로 돌아왔다. 식민 관료 생활을 하면서 인간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에 강한 혐오감을 느끼게 되었다. 저서로는 [파리와 런던의 안팎에서], [버마 시절], [카탈로니아 찬가], [1984] 등을 집필하였다.
독재, 독재자, 독재국가를 동물과 농장이라는 귀여운 배경을 통해 그려낸 고전문학, 짧은 분량속에 빈틈없이 몰아치는 구성은 독자로 하여금 책장을 덮지 못하게 만든다.
줄거리 / 등장인물 * () 해당 동물을 풍자하는 대상
존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메이저(칼 마르크스) 나폴레옹(스탈린) 돼지들(볼셰비키)
그렇게 해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동믈들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반란은 성공을 거두었다. 존스는 쫒겨나고 메너 농장은 동물들의 차지가 되었다.
지난 석 달 동안 돼지들이 열심히 공부한 끝에 동물주의 원리들을 일곱 계명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노라 설명했다. 그 계명들은 이 순간부터 동물농장의 모든 동물들이 준수해야 할 불가변의 법률이 된다고 그들은 말했다. P.28

돼지들은 직접 일을 하지 않는 대신 다른 동물들을 감독하고 지휘했다. 아는게 많았기 때문에 돼지들이 지도 역할을 맡는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여름 내내 농장 일은 시계처럼 돌아갔다. 동물들은 일찍이 상상도 못 했을 만큼 행복했다. 과거 인색한 주인이 마지못해 동냥 주듯 던져 주던 먹이가 아니라 동물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위해 생산한 먹이, 진정한 그들 자신의 먹이였기 때문이다.
(점차 배급이 줄어들며, 알 수 없는 이유로 우유와 사과등이 사라지는 상황이 반복됨) “동무들, 여러분은 설마 우리 돼지들이 저들끼리만 잘먹고 잘 살기 위해서, 또는 무슨 특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그러는것이라고 생각하진 않겠지요?” 사실은 우유, 사과를 싫어하는 돼지들도 많아요. (그러나) 우리 돼지들은 머리 쓰는 노동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돼지들이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어야 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돼지들이 그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존스가 다시 오게되요. 존스가! 그래요! 존스가 다시 오게 됩니다!
어느 날 스퀼러는 달걀을 모두 내놓아야한다고 발표했다. 암탉들은 소리를 지르며 대들었지만, 그들의 식량 배급은 중지되었고 마침내 항복했다. 그 사이 암탉 아홉마리가 콕시디아라는 병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스스로에게 두 개의 훈장을 수여했으며, 돼지를 제외한 다른 동물들의 자백과 처형이 반복되었다. 식량 생산량은 200%, 300% 혹은 500% 늘어났다고 발표되었다. 그렇지만 동물들은 통계숫자 보다는 먹을 것이나 더 많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때가 자주 있었다.
어느 날 밤 자정께 마당에서 쿵하는 요란한 소리가 났고, “일곱 계명” 이 쓰여 있는 헛간 벽 아래 사다리 하나가 부러져있고, 정신을 잃은 스퀼러가 사다리 옆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 염소 뮤리얼이 “일곱 계명”을 읽어 보다가 하나를 또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작품은 독재를 다룬 풍자이자 우화이다. 풍자는 당대의 사건을 표현하지만 우화는 시대를 넘는다. 이 책이 쓰여지던 당시의 “존스” 와 “나폴레옹”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알기 쉽게 쓰였지만, 그것은 풍자로서의 역할이다. 우화로서의 존스와 나폴레옹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일까.
독재의 실패는 필연이다.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하 자본주의 논리, 생산의 비효율 같은 문제들만이 아니다. 독재의 가장 큰 단점은 반드시 큰 실수를 낳는다는 것이다. 때론 성공할 수 있다. 복잡한 과정과 많은 의견들을 수렴하지 않고 홀로 선택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혹은 현명한 선택으로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이 반복된다면, 심지어 이전의 성공으로 확신에 찬 오만으로 선택한 결정들은 그들을 더 큰 실패로 이끌게 된다.
민주주의는 복잡하고 느리다. 그러나 그렇기에 우리는 큰 실수를 피할 수 있다. 그렇다 민주주의는 큰 성공을 하기 위한 체제가 아니라 큰 실패를 피하기 위한 체제라고 생각한다. 선거(투표)라는 형태로 모두의 의견을 들어야 하기에 답답하고 때론 불편하며, 이해할 수 없는 나와는 너무도 다른 이들의 의견까지 경청해야 하는 이 제도는 그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을 지킨다.
나의 할아버지께선 한국전쟁 중 평안북도에서 남으로 내려와 살아남았고, 정착하셨다. 그런 할아버지는 평생을 아침 6시 이전에 일어나셔서 9시 뉴스가 끝난 후 잠에드셨다. 1990년대 우리 집은 남자와 여자가 다른 밥상에서 밥을 먹으며, 아들인 내가 주방에 가면 “고추 떨어진다” 라는 말을 듣던 집이다. 어렸던 나로서는 기억나는 것들이 많지 않지만 분명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 곳에 할아버지에게 “아니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할아버지는 나쁜 사람은 아니셨다. 도박도, 폭력도, 음주도 하지 않으셨다. 본인의 은퇴이후에도 경제적인 지원은 필요하지 않으셨고 심지어 내 대학교 등록금까지 내주실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웃는 사람은 없었다.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변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이젠 내가 아버지가 되었다. IMF,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 등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아르바이트와 고등학생이라는 제법 이른나이부터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가정을 꾸려냈다. 내 아들은 나와 내 아내가 한 번도 가져보디 못한 자신의 방을 태어나기 전부터 갖고 있다. 전업주부인 아내는 가사와 육아에 전념하며 항상 아이와 함께한다. 이제 나에게 남은 문제는 단 한가지.
“아버지가 틀렸다, 그게 아니다.”
언젠가 내 자식에게 이 말을 듣게 되는 그 날,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들의 고민과 불만을 배부른 투정으로 치부하지 않고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공감하며 내 마음과 생각을 깎아 변화해야 한다. 그것은 어쩌면 지금까지 이룬것들보다 훨씬 더 힘든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야만 한다.
할아버지는 본인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가갛지 않았기에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신의 생각을 듣지 않는 할아버지와 가까워질수 없었다. 나는 내 생각을 얘기하는것보다 원하는 대답을 해주며 멀어지기를 선택했다. 나는 그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있어야 한다. 나와 내 아들의 관계는 이전과 달라야 한다.
인상깊은 구절
그래, 맞아,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창 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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